憶..

뉴질랜드에 남겨진 미련(2001년)..

선경호(宣京鎬) 2024. 3. 7. 02:37

2001년, '관광여행 길잡이' 라는 학업목표를 달성하여 행복한 삶을 실현하고자, 작정하고 향한 나라는 천연의 보고이자 관광국가인 뉴질랜드이었다.

처음부터 학업에 몰두하려고 일부러 한국교포수가 적은 소도시에서 대학예비과정인 어학연수를 하던 중, 주일에 교포들이 모여서 '한국인의 정'을 나눈다는 한인교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의 수장인 한인선교사가 교회재정운영 등의 문제로 인해 한인교포들의 공분을 사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정의감때문에 그 교회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교회와 관계된 전도사부부를 통하여 교회의 투명한 재정공개와 선교사의 사욕적인 목회활동의 반성을 촉구하는 차원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그 후 나는 예정된 대학입학스케쥴에 따라 오클랜드로 이동하여 학생비자발급과 새로운 집을 렌트하는 등의 본격적인 유학생활을 준비하여 관광대학과정의 학업을 시작하였다.

지금도 내자신이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당시에 유학의 목표만을 생각하며 성실하게 공부에만 매진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학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마지막 여행지답사과정만를 남겨둔 시점부터- 이상하게도 나의 주변에서
불순한 의도가 담긴 행동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뉴질랜드의 행정수도인 웰링턴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현지인들을 목격하고서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조치도 없었고,
그 후로도 더우기 타국에서 벌어지는 황당하고 위협적인 상황들에 대해서 내가 적극적으로 컨트롤을 할 수 가 없다는 무력감이 평소 '리걸마인드'를 지닌 나를 더욱 힘들게 하였다.

정신적인 고통이 깊어지고, 결국은 '그곳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하여,
아쉽게도 뉴질랜드에서의 학업과 생활기반 등 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나또한 평범한 사람인지라,
가끔씩 그때를 떠올리면 천불이 날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한편으론 그상황을 잘 참아내고 무사히 귀국했기에,
지금의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안에서 귀여운 늦둥이 외동아들과 정말 잘 살고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도다.

나의 사주풀이에는 잠재된 殺氣가 있기에, 가끔씩 일부러 잔상처를 내서 피를 보아야만, 그 殺氣를 잠재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당시 나의 분노폭발을 막는 유일한 끈은- 혹시나 불미스런 사건으로인해 연로하신 어머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아픔을 절대 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훗날 여건이 되면 늦둥이아들과 함께 다시 뉴질랜드에 돌아가리라.
꿈 꾸었던 뉴질랜드 순수자연의 여행지에서,
모든 여행자들과 함께 평화로운 안식을 나누겠다고- 나 자신을 다독여 보노라..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의 따사로운 기운이_ 머뭇거리는 우리에게 채근하듯이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털어버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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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의 따사로운 기운이 머뭇거리는 우리에게 채근하듯이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털어버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라~"